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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들에게 시련의 기간은 길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까지 ‘여군’은 단지 병과의 하나였다고 하는데요. 보병·포병·기갑처럼 하나의 기능으로 분류를 했었다고 합니다. 모든 여군에게 임신이 허용된 것도 1988년부터인데요. 부사관은 결혼과 임신이 모두 금지됐었고, 장교는 결혼만 가능했다고 합니다. 여군에게 결혼·임신은 제대를 의미하는 거였다고 하는데요.

여군은 2002년까지 ‘여군학교’에서 따로 교육을 받았으며, 지난해에야 여군 보직제한 규정이 완전히 폐지가 됐습니다. 그래도 극심한 차별을 감수하고 군문(軍門)에 도전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았는데요. 그 수가 해마다 늘어 2016년 여군 장교와 부사관은 1만명을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이제 여군에 붙는 ‘최초’, ‘1만명 시대’라는 수식어가 더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인데요.

하지만 여전히 많은 남성들은 여군이 군 조직에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남성을 밀어내고 군을 택한다며 비하하는 목소리도 많은데요. ‘직장’으로서 군대를 선택하는 게 과연 비난받을 일일까요? 과연 경제적인 이유로 여군이 되려고 하는 걸까요?

조선웅 육군사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지난달 관련 보고서를 냈는데요. ‘여성의 군대 지원 동기에 관한 연구’입니다. 갓 임관한 1년차 소위부터 26년차 중령까지, 11명의 여군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비전투병과는 2명뿐이었고 나머지 10명은 전투병과 소속이었는데요.

이들 중 7명은 경제적 이유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고, 3명은 약간 언급하긴 했지만 지원 이유와는 관련이 없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2명은 “돈이 이유였다면 아마 군 생활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고 합니다. 유일하게 경제적 이유로 군에 지원했다고 한 응답자는 “대학 졸업 후 바로 독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다고 합니다.

‘국가에 대한 헌신’을 적극적으로 설명한 장교들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들은 일제의 침략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도발을 떠올렸고 ‘국제사회 기여’를 거론한 여성도 1명 있었다고 합니다. 여성의 애국심을 저평가해선 안 된다는 것인데요. 미국에서도 두 번의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 9·11 테러 등 전쟁을 겪거나 외부의 공격을 받았을 때 여성의 군대 지원율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대다수 여군 장교들은 남성적인 군대에 반발심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호기심을 느꼈다고 하는데요. “군대가 왜 남성의 전유물이냐”고 불만을 가졌다가도, “여성도 군대조직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 입니다.

일부는 “외향적인 성격이어서 남성적인 군대에서 잘 적응할 것”이라고 여기기도 했는데요. 군대 분위기가 여성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소수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면 눈에 쉽게 띄어 직업적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고 합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더 노골적으로는 ‘돈 때문에 군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조 교수는 이들을 인터뷰하면서 바람직하지 않은 부분도 일부 발견했다고 하는데요. 그는 이것을 남성 중심의 군대문화를 바탕으로 성장한 ‘남성화된 여군’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조 교수는 “개인이 조직의 문화에 적응할 때 자신의 문화나 정체성을 버리고 조직의 문화만 받아들이는 ‘동화’와 같은 맥락”이라며 “한국에서 남성화된 군대의 이미지가 얼마나 뿌리깊은지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표현을 했습니다.

이어 “군대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의식이 성평등한 문화 속에서 발휘될 수 있도록 해야지 여군이 남성화돼 또 다른 성차별적 문화를 생산해내는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남성화된 여군과 그렇지 않은 여군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타내었는데요. 과거에 입대해 근무기간이 길수록 이런 ‘남성화’ 경향은 짙어졌고 새로 입대하는 여군 장교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마찰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조 교수는 “군에서는 군인의 역할을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홍보해서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라며 “비록 작은 일이라도 그 의미를 충분히 알려 동기부여를 하고 잘못된 업무 관행은 과감히 바로잡아 여군의 지원동기가 잘 발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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